2021년 넷플릭스, 장르 드라마, 감독 김정인, 정소영, 황슬기, 12세 이용가, 출연 정연주, 조현철, 손수현, 신재휘, 김금순, 이주영.
영화는 3개의 단편을 묶어 총 1시간이다. 사실 음식이 나오는 영화를 하나 골라서, 어떤 번쩍뻔쩍한 음식이 나오는지 확인하고 비평을 하고 싶어서 영화를 틀었는데 쌀국수, 떡볶이, 라면과 총각김치, 파김치가 나오는 게 아닌가? 김이 팍 세어버렸고 금세 배가 고파서 라면을 끓이러 갈 생각이다. 비평은커녕 설득 당해버린 것이다. 이 영화는 한국인의 Soul food를 등장시키면서 감독이 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힘주지 않고 가볍게 던진다. 오늘도 잔뜩 힘을 주고 하루를 산 당신에게, 릴렉스하고 이 얘기를 들어봐. 라고
《나이트 크루징-김정인》 "밥 한 번 먹자"는 말의 힘
회식을 마치고 술에 취한 팀장을 택시를 태워보내는 직원들과, 팀장이 차에 타며 하는 인사말 "잘가. 언제 밥 한번 살게."
송이(정연주)는 재계약이 안 된 모양이다. 함께 일했던 동료들이 헤어지며 인사를 한다. "다음엔 우리끼리 밥 먹어요. 맛있는 거 살게요."
"답답할 때 연락해. 언제 밥이나 한 번 먹자." 회사를 떠나지만 그래도 가족보다 더 자주 매일 보던 사이였어서 그런지 정이 들어서 그 말을 할 때 마음만은 진심이다. 이후에는 다시는 만날 일이 없더라도 말이다. 함께 밥을 먹는 것은 둘 사이의 공백을 채워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한다.
송이가 학창 시절에 잘 지냈던 친구 훈이(조현철)를 야밤에 동네에서 우연히 만난다. 반가운 마음에 많은 생각이 들지만 둘은 각자 사회인이 되어 오랫동안 교류가 없었고 그 틈새로 어색함이 밀려올 무렵 둘 중 누군가는 "언제 밥 한 번 먹자."는 말로 자리를 피하려 하지만 둘 중 누군가는 생각한다. "지금 먹자!"
야심한 밤 주황빛 가로등 아래, '따릉이'를 빌려 쌀국수 트럭을 찾아 나서는 기행을 하게 된 두 사람. 나는 이 장면이 동심으로 돌아간 두 주인공을 표현하는 것 같아서 좋았다. 어릴 때는 엉뚱한 것에 골몰하는 경우가 많고 꼭 거기에 한두 명씩 모여서 사고를 치곤하니까. 게다가 '맛있는 것을 찾는 일'은 두 사람이 어떤 다른 관심사를 가지고 있었든지 간에 삶에 있어 공통된 소통 거리라고 생각한다. 고된 일과의 끝엔 누구나 맛있는 것을 먹고 싶어 할 테니까.
《맛있는 엔딩-정소영》 잘 이별하는 방법
"밥은 먹었나?" 상대의 기분을 살핌과 동시에 위로까지 할 수 있는 친절한 말. 그렇게 상혁(신재휘)은 예니(손수현)를 위로와 동시에 축하하고, 달콤한 떡볶이 소스가 신발에 떨어져 색이 물드는 것 처럼 그녀의 마음속에 상혁이 스며든다. (밀당천재 상혁이)
예니는 상혁과의 긴 연애 기간을 곱씹어 보며 상혁이 잘 해줬던 일들을 떠올린다. 그리고 눈물이 난다. 서로 사랑하던 아름답던 우리가 이제 더는 없을 것이기에. 미워하지만 사랑했기에 마지막 성의를 보인다. 그녀는 떡볶이를 만들어 테이블에 차려둔다. 모든 추억들이 내려앉아 있었지만 이제는 텅 비어버린, 둘만의 것이었던 테이블 위에. 이보다 예의바르고 아름다운 이별이 있을 수 있을까. 이제 곧 옛 애인이 될 사람이 한 때 사랑했던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는 것은 중요하다. 못되게 굴지 않고 연민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 예니는 상혁과 잘 이별하기 위해 상혁을 위해 달달한 떡볶이를 만들어 두었다.
《좋은 날-황슬기》
미금(김금순)은 허풍 떤 것을 정아(이주영)에게 들켜서 쥐구멍으로라도 숨고 싶다. 자식 자랑 아니면 할 얘기가 없는 엄마세대는 자신들의 자격지심 때문에 곧잘 자녀의 일을 과장하고 부풀린다. 엄마들이 좋아하는 것도 알아주지 않는 자식들이지만, 자식이 해주는 것들이 곧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이 된다. 사실 정아는 발레 공연 따위 관심 없다. 자신과 딸아이를 고급 문화 생활을 즐기는 사람처럼 있어보이게 드러내고 싶은 것뿐이다. 미금을 따라나선 것도 그런 이유이다. 발레 관람보다 친구가 허풍 떤 현장을 습격하는 것이 더 재밌을 것 같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내 미금의 씁쓸한 못난 모습만 확인하고 말았다. 그런 미금의 앞에서 정아도 '있어보이려는' 태도를 내려놓는다.
두 사람은 요즘 핫한 한강에 딸들의 도움 없이 스스로 가기로 한다. 도와주는 자식들이 없어도 두 사람은 처음 와보는 한강에서, 드라마에서 본 것처럼 '뽀글이'를 직접 끓여본다. 서로를 기특해 하면서. 그렇게 직접 '한강의 추억'을 만드는 두 여자. 딸이 승진을 했거나 상을 받아서 좋은 날이 아닌, 자신들에게 좋은 날을 만들어 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