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 노섭의 회고록 '노예 12년'을 바탕으로 제작된 드라마입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1841년은 주인공이 살던 뉴욕은 노예제도가 폐지되어 자유주였는데, 그가 납치되어 노예주인 루이지애나에 팔려가는 비극적인 일을 다룬 내용입니다.
영화 '노예12년' 실화
솔로몬 노섭은 뉴욕주에 거주하는 흑인입니다. 솔로몬의 아버지는 해방노예이고 어머니는 자유인 신분입니다. 솔로몬은 처음부터 노예와는 무관한 태생이었고 재산도 있어서 충분한 교육 기회도 있었습니다. 바이올린을 연주할 줄 아는 솔로몬은 목수이자 피들러였습니다. **피들러: 호텔이나 공연장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사람.
서커스단의 제안으로 몇차례 일을 함께 하다가 그들에 의해 납치되어 루이지애나로 끌려갑니다. 납치범들은 처음에는 워싱턴 D.C에 가서 일을 하자는 권유를 했지만 수월하게 납치하기 위한 계략이었습니다. 워싱턴D.C에서 일하기로 한 것을 아내에게 알리지 않은 것 또한 솔로몬의 큰 실수였습니다.
솔로몬은 갖은 폭행과 인권유린을 당하며 짐승처럼 노예시장에 끌려나가고 '플랫'이라는 이름이 붙여집니다. 다행히 첫 주인은 동정심을 가진 주인이었는데 그로부터 바이올린도 선물받습니다. 아쉽게도 그의 재정 상황이 좋지 못해 솔로몬은 금세 다른 사람에게 팔려갑니다. 솔로몬은 그에게 자신이 자유인인걸 알면 풀어달라고 애원했지만 솔로몬을 담보로 잡혀있는 빚이 있어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립니다. 1843년 가장 악독한 주인 엡스를 만나 무려 10여년을 보냅니다.
당시에 흑인 노예의 몸값은 현재 돈으로 약 2~3천만원이나 된다고 하니 이런 일들은 빈번하게 일어났을 것이라고 추정됩니다. 심지어 그때까지도 흑인은 백인을 고소할 수 없었습니다. 솔로몬 노섭뿐 아니라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흑인 인신매매가 더 많이 있을 것입니다. 아래의 표를 보면 솔로몬이 구출된 1853년까지 노예주와 자유주의 구분을 알 수 있습니다. 뉴욕주에서 남쪽 끝자락 루이지애나주까지 엄청난 거리이니, 솔로몬이 몰래 탈출한다고 해도 곧 다른 주에서 노예로 잡힐게 뻔했을 것입니다.
캐나다에서 온 목수 베스는 노예제의 부당함을 연설하는 등 노예제 폐지론자여서 솔로몬과 친해지게 됩니다. 솔로몬은 베스에게 자신이 부당하게 노예가 된 사연을 알리고 자유인임을 증명하는 증명서를 갖고 와 달라고 부탁합니다. 이때까지 노예 관리자나 다른 노예들에게도 자신은 자유인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는데 구타를 당하거나 솔로몬이 노예의식이 없다고 생각해 경계하고 시샘하여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솔로몬은 베스가 자신을 밀고하지 않을까 베스에게 이를 알리면서 아주 조심스러웠을 것입니다. 솔로몬의 편지를 베스가 뉴욕주에 있는 아내에게 전해 그녀가 탄원서와 진술서를 주지사에게 보내고, 법적 절차를 통해 변호사를 대동해 보안관과 함께 농장으로 와 그를 구출해냅니다.
구출될 수 있었던 배경
베스의 행동이 아니었다면 솔로몬은 구출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솔로몬이 구출 된 후 책을 쓰고 흑인 인권 운동가로 활동하면서 많은 흑인 노예들을 캐나다로 도망치도록 도왔는데 그 때문인지 목수 베스에 대한 기록은 없습니다. 솔로몬이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타겟이 되어 그들의 위협으로 인해 숨어 살았기 때문인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솔로몬을 구출한 변호사는 헨리 B. 노섭입니다. 해방노예인 솔로몬의 아버지의 주인이었던 인물의 아들입니다. 해방한 주인의 성을 따르고, 해방된 노예의 아들을 변호해주는 그들의 관계는 우호적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솔로몬은 납치되어 운이 나쁘기도 했지만 아내에게 말을 하지 않고 서커스단과 일을 하러 간 그의 작은 실수를 제외하면 그의 태생은 운이 좋은 사람이었던 듯 합니다.
목화 농사 중심의 미국 남부에서는 농업에 필요한 인력으로 흑인 노예들을 많이 이용했기 때문에 솔로몬이 있던 뉴욕주가 있는-상대적으로 자본주의가 발달한-북부와는 대조적으로 노예해방이 늦게 일어났습니다. 1823년에 노예제 폐지를 위한 모임이 결성되었는데 이 협회는 베스처럼 민중운동을 펼쳤습니다.1831년 남부에서 흑인이 백인지주의 억압에 맞선 봉기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