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작 문학소설 2018년 8월 14일 델리아 오웬스 "가재들이 노래하는 곳(Where the crawdads sing)"
가재가 노래하는 곳 줄거리
"술만 먹으면 자기가 무슨 천하무적인줄 아는 애들이 있지."
20미터 높이의 화재 감시탑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경관이 말한다. 피해자는 이 마을 최고의 쿼터백이잖아.
체이스(해리스 디킨슨)를 죽인 사람은 클라크(데이지 에드거존스) 라는 정황 증거만으로 클라크는 구속되어 재판에 넘겨진다. 일사천리로 사형이 구형될 위기에 처한 여주인공. 부모도 없고 사회적으로 격리된 채 살아가는 주인공의 편에 선 사람은 변호사를 빼고는 아무도 없어 보인다. 곧이어 이 주인공의 사연이 무엇인지 그녀의 과거가 나온다.
온갖 풀벌레와 새 소리가 어우러지고 가지 사이로 햇빛이 부서지는 아름다운 나무아래 거지같은 몰골을 한 클라크. 그녀는 카야로 불린다. 카야는 사람을 보고 유독 경계하는 모습이다. 그런 그녀가 숲에서 테이트(테일러 존 스미스)를 만난다. 그는 글을 읽을 줄 모르는 그녀에게 읽고 쓰는 법을 가르쳐준다. 매주 세 번씩 생물학 책을 갖다주고 함께 읽는다. 너무나 친해진 그들은 연인사이가 된다. 그러나 테이트는 대학에 합격했고 곧 이 곳을 떠나야만 한다. 받아들일 수 없는 카야.
테이트는 헤어지며 카야에게 출판사들에 연락해 카야가 그린 습지의 생물들을 책으로 낼 것을 권유하고 떠난다. 언제까지 홍합만 따며 살 수는 없지 않겠느냐며 진심어린 도움을 주고 떠난다.
5년 후 집 주변 습지를 개발하러 나타난 업자들 때문에 터전을 빼앗길 위기감에 휩싸이는 카야는 땅에 밀린 세금을 다 내면 땅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출판사에 그림들을 보내 책을 펼 수 있게 됐다. 외로움을 채우고 싶었던 카야는 테이트가 영영 떠나버린 후 체이스와 가까워졌는데 체이스는 신비로운 습지 소녀 카야를 호기심에 건드렸고 하룻밤 가지고 놀 생각이었지만 호락호락하지 않자 몇날 며칠을 공들여 우리가 결혼을 할 것이라며 순진하고 외로운 카야를 결국 꾀어낸다.
"자연에서 변하지 않는 것은 변한다는 사실 뿐이다."
카야가 습지를 떠나서는 절대 살 수 없을거라 생각한 테이트는 선택을 해야만 했고 자신은 그녀가 원하는 것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그녀를 고통스럽게 하지 않기 위해 편지 한 통 조차 보내지 않았고 그런 테이트는 누구보다 카야를 위하고 사랑했음을 알 수 있다. 두 사람에게 사랑과 이별은 모래밭을 덮는 물결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상처는 거기 있었다. 그는 여전히 카야를 사랑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깨닫는 공백은 너무나 길었고 그 자리에는 이미 체이스가 들어와 있었다.
그러나 시내로 나간 카야는 자신을 체이스의 약혼녀라고 소개하는 여자를 만나고 만다. 체이스는 부모님의 뜻으로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일'이 있고 '나는 너를 존중하기 때문에 너를 바꾸려고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좋아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건 카야 너야.' 라며 항변하지만 자신을 속이고 기만한 체이스를 카야는 이해할 수가 없다. 체이스는 자신을 이해해줄 누군가를 원했고 그게 카야일 거라고 생각했지만 두 사람은 너무나도 달랐다.
또 다시 배신당한 카야는 집에서 조차 생명에 위협을 느낀다. 폭력에 노출된 엄마가 떠나야만 했던 이유를 이제는 이해하게 된 카야. 계절이 바뀌듯 사람들은 떠난다. 역시 혼자 살아야만 했다-고립된채-라고 생각한다.
"Being isolated was one thing. Living in fear, quite another."
다시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다. 또 언제 맞을까만 생각하며 사는 것. 유년기부터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며 자랐고 그로 인해 가족들이 떠나가 혼자만 남은 카야는 광기에 찬 체이스가 언제 다시 집으로 들이닥쳐 세간을 부수고 자신을 때릴지 두려웠다. 고립되어 사는것도 두렵지만, 두려움 속에 사는 것은 완전히 다른 것이다. 두려움에 떨고 있을 때 테이트가 나타나 다시 삶을 이어갈 용기를 준다. 시내로 나가 출판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도록 독려한다.
현재의 내용으로 돌아가 카야의 변호사는 그녀의 알리바이를 토대로 판결을 내려달라 배심원들에게 호소한다. 부모에게 버려져 고립된 불쌍한 소녀를 우리 모두는 배척해왔지만 드디어 그녀를 공정하게 대해줄 때가 왔다고 호소한다.
고립되어 살았지만 자연의 일부로서 충분히 살아온 그녀., 파도가 가면 오듯이 자연이 인도하는 대로. 습지는 죽음을 통달하고 있다. 비극이라고 규정짓지도 않는다. 죄는 더더욱 아니다. 카야는 모든 생물이 살아남기 위해 그러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가끔 먹잇감이 살아 남으려면 포식자는 죽어야 한다. 영화의 끝에서 그녀는 그렇게 습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