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행크스 주연. 코미디 드라마. 마크 포스터 감독. 비관주의자이자 염세적인 인물인 주인공과 그를 주변으로 벌어지는 일들을 담은, 가슴 따뜻해지는 이야기.
비관주의자들은 대체로 착하다.
OTTO. 이름 마저 좌우대칭이 잘 잡힌 결벽증적인 이 남자는 영화 시작부터 생을 끝내고 싶다. 그러나 생을 끝내는데에 필요한 준비물을 사러 간 마트에서도 점원과 갈등을 빚는다. 내가 필요한-구체적으로는 목을 메는 데에- 로프는 5피트인데 왜 6피트 금액을 지불해야 하느냔 말이다. 점원이 야드 단위 판매를 설명하지만 오토는 불통이다. 나랑 말이 통하는 사람을 데려와! 점원은 상급자를 호출한다. 융통성 없는 불통 주인공 오토와 점원의 실랑이에 질려갈 때 쯤 오토를 휘어잡을 대사를 쳐줄 인물을 기대하고 있을 무렵 부점장이 나와 순수한 눈으로 하는 말 "그럼 나머지 1피트만큼 더 잘라 드릴까요?" 갑자기 오토가 불쌍해졌다. 오토에게는 차라리 벽을 보고 말하는게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주변 상황을살피고 정돈하는데에 예민한 오토는 오늘도 주거단지 내 불법 통행 차량을 정리한다. 허가받지 않은 주정차와 차량 통행을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쫓아낸다. 오토에겐 팩트가 중요하고 법규는 지켜져야 한다. 그런 오토가 열심히 다닌 회사에서 명예 퇴직을 가장한 수치스러운 불명예 퇴직을 당한다. 그 길로 오토는 아내의 곁으로 가는 계획을 실행하기로 했다. 더 이상 이딴 세상에 미련이 없다. 믿을 만한 것이 없는 이 세상에는 머저리들만이 가득하고 나를 괴롭히는 그들과 더는 실랑이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삶에서 유의미한 것을 찾는 일 조차 아내가 떠난 후 그에게 더는 의미가 없다. 그의 전부였던 아내와의 기억은 유난히 더디게 잊는 오토에게 아직도 생생하다. 아내와 여행을 가다 겪은 자동차 사고를 어제의 일처럼 기억한다. 예민한 기질에 죄책감에 오래도록 앓았을 오토. 아내가 사고를 당한 후 맞닥뜨리는 불합리한 대우들과 주변의 처사들로 절망하고 본인 탓을 했을 것이다. 내가 그 때 화장실을 가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오토가 할 수 있는 일은 주거단지 내 통행 차량을 통제하고 주정차를 금지해 아내에게 더 안전한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었다. 교통정리에 있어서 유난히 까칠하고 예민하게 행동하는 까닭은 그러했다.
"완전 개꼰대. 짜증나."
레깅스를 입고 아침 체조를 하는 이웃 남자를 보고 80년대에 올림픽을 석권한 루마니아계 미국인 체조선수에 빗대고, 집으로 걸려오는 고도로 진화한 AI 스팸전화에 격하게 반응하며, 알파벳 순으로 정리된 아날로그 전화부를 사용하고, 피트 단위를 사용하는 점을 보면 그는 아직도 잘 나가던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듯 하다.
생을 마감하기 전 전화를 해지하고 전기를 끊고 가스를 끊고 쓰레기를 버린다. 청소를 깔끔히 하고 깔끔한 정장으로 갈아입는다. 그리고 늘 지니고 다니는 행운의 동전도 챙긴다. 아내와의 추억의 물건이다. 천장에 목을 메달려는데 창밖으로 허가받지 않은 트레일러를 주차하는 두 사람이 보여 뛰쳐나가는 오또. 하지만 그들은 주차 허가증을 이미 가지고 있다. 평행주차를 더럽게 못하는 안경잡이를 차에서 끌어내 본인이 직접 주차를 하는 오토. 그에게 새로 만난 토미(마누엘 가르시아룰포)는 '후진 경보음이 나오는 신식 자동차를 모는데 그 마저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는, 집을 렌탈하고 과분한 차를 모는 머저리'이다. 다시 하던 일을 마치러-목을 메러- 집으로 돌아간 오또의 집을 또 두드리는 부부. 멕시코에서 온 명랑한 와이프 마리솔(마리아나 트레비뇨)은 감사인사로 따뜻한 멕시코식 치킨요리를 건넨다. 앨빈랜치를 빌려달라고 하는 토미. 앨빈이 아니라 앨런이라고 오토를 거드는 마리솔. 오토가 생각하기에 머저리 같은 남편 곁에 있지만 아내는 그와 다르게 어딘가 맹랑한 듯 하다. 겉으로는 투덜거리지만 희안하게도 앨런랜치며 사다리며 마리솔이 요구하는 것들은 모두 차고에서 꺼내다 빌려주고 면허가 없는 그녀가 요청하자 직접 운전을 해주기도 하고 서른살에 아직 운전면허증도 없는 마리솔에 기함하며 마리솔이 운전 강습을 해달라고 하자 누구보다 제대로 그녀를 가르쳤으며 그녀가 종종 건네는 손수 만든 음식들을 잘도 받아 먹는다.
천장이 부실한 바람에 첫번째 시도는 실패를 한다. 반푼이 같은 엘런 렌치도 모르는 남편이 있는 부부가 이웃으로 이사왔다는 이야기를 아내의 묘소에 가서 늘어놓으며 그의 얼굴에 토미를 생각하는 약간의 동정어린 표정이 스친다. 어쩌면 따뜻한 표정인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내 냉소적이고 염세적인 본인의 표현방식으로 세입자인 그들을 안타까워한다.
오또는 그 후로 세 번의 생을 마감하는 시도를 더 하게 되지만 번번히 마리솔이 삶에 개입해 방해를 한다. 의식이 흐릿해져 갈 때쯤 항상 아내와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고 매번 아내는 지금은 아직 아니라고 그를 돌려보낸다. 세상을 비관하는 태도로 사는 그에게 아내는 오토를 세상에 묶어두게 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런 그녀가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한다. 이 세상에 오토가 해야 하는 일들이 있을 것만 같다.
그런데 그 때 20년도 넘게 이웃으로 지낸 부부가 늙고 병들어 자식들로 부터 집을 빼앗기고 요양원으로 쫓겨날 위기에 처했다. 이 사건의 뒤에는 불법으로 개인정보를 수집해 노인들의 집을 탈취해서 거래하는 전문 부동산 업자가 있다.
비관주의자도 염세주의자도 세상에 필요한 존재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사람들은 모두 다른 성향을 갖고 있다. 크게 나누어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사람, 사교적이고 동정적인 사람, 이해와 도움을 중시하는 사람, 실용적이고 능동적인 사람 등이라고 생각했을 때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져 있으면 이 세상은 이미 파멸했을 것이다. 건국 이래 매일 전쟁만 하거나, 생각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 굶어 죽었거나.
오토를 둘러싼 세상은 따뜻하고 인정이 넘치는 세상이다. 하지만 본인은 그것을 '만남 뒤에는 반드시 헤어짐이 있고 믿을 만한 존재는 나 뿐이다.' 라고 해석한다. 그래서 오토는 현실적이고 논리적이고 보수적이다. 세상을 비관적인 눈으로 보고 표현 방식도 차갑다. 아버지로부터 그렇게 교육받고 자랐기 때문일 수도 있고 삶에서 겪어온 데이터로 인해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 오토는 따뜻한 주변 세상이 정상적인 궤도를 벗어나지 않게 하는 중요한 존재이기도 하다. 내 집을 빼앗으려는 도둑놈들로부터 집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어떻게 싸워야 하는지, 심장마비로 철로에 떨어진 사람을 어떻게 구해야 하는지 판단하고 즉각 실행하며, 주거지에 차량 통행을 차단함으로써 휠체어가 다닐 수 있도록 안전한 주거 환경을 확보한다던지 하는.
염세주의자는 사실은 따뜻한 내면을 가진 사람들이다. 단지 표현하는 방식이 거칠 뿐이다. 그 표현을 앞서서 함으로써 내 마음이 다치는 것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다. 방어적인 것이 나쁜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쌀쌀맞은 오토를 초연하게 대하는 이웃들의 태도에 안도감을 느낀다. 오토를 눈살 찌푸리고 보던 사람은 어쩌면 나 하나였다. 그의 따뜻함을 이웃들은 이미 알고 있었던 거다. 그것이 그 만의 다정함의 방식이라는것도.